
저는 항상 새로운 분기가 시작되면 매 분기 빠짐없이 판타지 애니메이션을 찾아서 정주행하는 것이 인생의 큰 취미 중 하나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애니메이션이 소위 말하는 '망작'인지 아니면 역대급 '명작'인지 따지지도 않고 가리지 않고 다 본다는 점인데요. 일단 욕을 하더라도 내 눈으로 다 보고 나서 욕하자는 게 제 확고한 생각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하도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먹어보다 보니, 주변 친구들에게는 종종 '똥믈리에'라는 웃픈 별명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제가 오늘 글을 시작하며 굳이 이 짜치는 이야기를 먼저 꺼낸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려고 하는 작품이, 제 뒤통수를 아주 심하게 타격한 엄청난 녀석이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도 평소처럼 새로 시작하는 판타지 애니메이션을 찾던 중 한 작품이 제 레이더망에 딱 걸려서 가벼운 마음으로 1화를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1화의 퀄리티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눈이 핑핑 돌아가는 화려한 작화와 뇌에 도파민이 팍 터지는 짜릿한 전투씬은 제 눈을 사로잡기에 너무나도 충분했죠. 1화를 딱 보고 난 소감으로는 '와, 이번 분기에 진짜 대박 기대작 하나 건졌다!'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던만추 작가의 귀환, 레전드 작품의 탄생인 줄 알았다
심지어 이 작품에 대해 조금 더 정보를 찾아보니, 예전에 서브컬처 판을 한창 휩쓸며 엄청나게 유행했던 대작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던만추)'를 집필하신 유명 작가분의 신작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기대감은 그야말로 안드로메다까지 치솟았죠. '아, 이건 무조건 믿고 보는 레전드 작품이 나왔구나!' 싶었습니다. 바로 오늘 리뷰할 '지팡이와 검의 위스토리아' 1기 이야기입니다.
이 애니메이션의 주요 내용을 먼저 살짝 살펴보면, 마법이 모든 권력과 가치의 기준이 되는 세상에서 정작 마법을 단 한 톨도 쓰지 못하는 남주인공 '윌 세르포르트'의 고군분투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마법 학교 내에서 마법을 못 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열등생이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엄청난 무시와 하대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소중한 꿈을 이루기 위해 묵묵히 노력하는 정석적인 소년 만화의 전형적인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마법사들의 탑을 향한 불가능한 꿈과 귀여운 히로인 엘파리아
주인공이 이토록 지독한 멸시를 견디며 나아가는 최종 목표는 명확합니다. 바로 어렸을 때부터 늘 같이 지내며 소중한 추억을 쌓았던 소꿉친구이자 히로인인 '엘파리아'를 따라 마법사들의 최고 정점이라 불리는 '탑'에 함께 오르는 것이죠. 하지만 냉정하게도 주인공은 마법을 아예 쓸 수 없는 몸이기 때문에, 최고 고위 마법사들만 허락되는 그 탑을 오르는 것은 애초에 닿을 수 없는 신기루 같은 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검 하나와 무식한 신체 능력, 적을 빠르게 분석하는 능력으로 이를 악물고 노력하는 주인공의 앞길을, 마법 학교 졸업이라는 거대한 제도적 장애물과 라이벌들이 사정없이 막아섭니다. 사실 이 기대작이 제 기대를 화 수가 늘어날 때마다 처참하게 꺾기 시작한 건 중반부부터였습니다. 소개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을 굳이 여러분께 소개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단 하나, 바로 히로인 엘파리아가 너무너무 귀엽기 때문입니다.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그 사랑스러움이 제 탈주를 간신히 막아주었거든요.
점점 무너지는 퀄리티, 실망으로 가득 찬 삼진아웃의 늪
하지만 히로인의 귀여움만으로 커버하기에는 이 애니메이션이 저에게 준 실망감이 너무나도 컸습니다. 화 수가 거듭될수록 1화 때의 그 눈부셨던 유려한 작화는 어디로 갔는지 점점 뭉개지고 이상해지는 작화가 눈에 밟히기 시작했습니다. 그에 따라서 도파민을 책임지던 전투씬과 긴장감 넘치던 연출마저 덩달아 이상해지고 허술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여기에 결정타로 서사적인 부분마저 덜커덕거렸습니다. 주변 인물들이 주인공을 하대하고 무시하는 장면에 있어서, 시청자가 몰입할 수 있는 타당한 서사나 개연성 있는 이유도 없이 무작정 주인공을 억까하며 하대하는 장면들이 반복되다 보니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작화 붕괴, 연출 퇴보, 부실한 스토리 서사까지 말 그대로 제 기준에서 완벽한 '삼진아웃'을 당한 셈입니다. 물론 중반 이후에도 가끔씩 소위 '뽕 차오르는' 연출이나 화려한 액션 내용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흐려진 집중력을 방해할 정도로 널뛰기하는 작화 퀄리티는 참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뇌 빼고 시간 죽이는 용도로는 나쁘지 않은 킬링타임 액션물
결론적으로 '지팡이와 검의 위스토리아' 1기는 제 인생 명작의 반열에 오르기에는 많은 아쉬움과 하자가 명확히 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엄청난 대작을 기대하고 진지하게 몰입해서 보기에는 중간중간 힘 빠지는 구간이 참 많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이 정화되는 귀여운 여주인공의 비주얼을 보는 맛이 쏠쏠하고, 복잡한 생각 없이 화려한 마법 검술 액션만을 가볍게 즐기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나름 합격점을 줄 수도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뇌 빼고 시간 죽이는 용도'의 킬링타임 애니메이션을 찾으시는 분들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정주행해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똥믈리에인 저도 결국 끝까지 다 보긴 했으니까요! 이 작품을 이미 보신 분들이 있다면, 여러분은 작화와 스토리 중 어떤 부분이 가장 아쉬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