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번 대학교 비대면 수업 시절에 몰래 숨어서 보며 도파민을 풀충전했던 '전생했더니 슬라임이었던 건에 대하여(전생슬)' 2기 리뷰에 이어서, 오늘은 작품의 분위기가 다시 한번 180도 뒤바뀌며 수많은 팬 사이에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던 3기 리뷰를 들고 왔습니다. 2기 마지막에 흑막이었던 마왕 클레이만을 발푸르기스에서 말 그대로 영혼까지 탈탈 털어버리고 완벽한 사이다(답답함을 상쾌하게 만들어주는) 엔딩으로 끝이 났었기 때문에, 3기에 대한 제 기대감은 이미 하늘을 뚫고 올라간 상태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제가 이 작품의 3기를 마주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와 대학 초반을 지나 군 복무를 사회복무요원으로 이행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한 지역 아동센터(보육시설)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근무하고 있었는데, 마침 군 생활의 끝이 보이는 소집해제를 부쩍 앞두고 있던 나름 말년의 시기였습니다. 매일 부대 안에서 생활해야 하는 현역 분들과는 달리, 집에서 출퇴근을 하는 사회복무요원은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면 평소와 다름없는 자유로운 개인 생활을 온전히 누릴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방구석에 편하게 앉아 밀린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곤 했는데, 전생슬 3기가 바로 그 소집해제 전 지루한 대기 시간을 채워주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신성교황국 루벨리오스와의 충돌, 기대했던 긴장감의 행방
추억에 젖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작한 전생슬 3기의 주요 내용은, 지난 2기 초반에 잠깐 강력한 떡밥으로 소개가 되었던 인물인 히나타 사카구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히나타가 수장으로 있는 신성교황국 루벨리오스의 '루미너스교' 세력과의 피할 수 없는 정면 갈등과 종교적 대립을 메인 스토리로 그리고 있죠.
2기에서 템페스트 국민들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던 만큼, 루미너스교와의 전면전은 엄청나게 피 터지고 잔인한 대규모 전쟁 액션이 터져 나올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번 3기는 애니메이션 전체를 통틀어 가슴을 쥐어짜는 거대한 위기나 눈이 돌아갈 만한 역대급 명장면 같은 것은 거의 나오지 않더라고요. 대신 다음에 다가올 더 거대한 이야기들을 안전하게 풀어나가기 위해 철저히 '쉬어가는 빌드업'의 모습을 뚝심 있게 보여주었습니다.
맥 빠진 빌런 '칠요'와 대화로 풀어버린 히나타의 오해
솔직히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빌런들의 포스였습니다. 이번 3기의 메인 빌런이자 흑막 포지션으로 등장했던 루미너스교의 최고 상층부 노인들인 '칠요의 노사'들은, 마왕으로 진화해 세계관 최강자 반열에 오른 주인공 리무루 일행에게 하등 위협이 될 만큼 강한 상대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손가락 하나로도 참교육이 가능한 수준이었죠.
게다가 1기, 2기 내내 엄청난 포스를 풍기며 리무루를 죽이려 들어 큰 위협이 될 것이라 굳게 믿었던 히나타 사카구치 마저도 허무할 정도로 싱겁게 갈등이 끝이 납니다. 목숨을 건 잔인한 사투가 아니라, 리무루가 정성껏 가꾼 평화롭고 문명화된 나라의 발전된 모습에 감탄하고, 서로 마주 앉아 진솔한 대화를 나누거나 오해를 풀기 위한 가벼운 일대일 결투를 벌이는 정도로 아주 쉽게 응어리를 풀어버립니다. 덕분에 2기 때의 그 서슬 퍼런 전쟁 분위기는 어디로 가고, 서로 음식을 나눠 먹는 아주 평화로운 친목 도모 모습이 서사의 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인간과 마물의 공존을 향한 첫걸음, 축제의 장 '개국제'
그나마 작품 전반부의 큰 위협이었던 루미너스교 세력과의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하고 난 뒤, 3기 중후반부를 통째로 지배하는 메인 스토리는 바로 리무루가 그토록 추억하며 갈망하던 '개국제'라는 거대한 축제 이야기입니다. 인간과 마물이 아무런 편견 없이 함께 웃고 공존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진정한 첫걸음인 셈이죠.
리무루는 템페스트의 기술력과 화려한 문화를 전 세계에 자랑하기 위해 거대한 축제를 개최하고 던전을 개장합니다. 이 개국제라는 축제를 통해 마침내 새로 마주하게 되는 서쪽 인류 국가들의 수많은 통치자 및 왕족들과 긴밀한 대화를 나누며 경제적, 정치적 기반을 아주 탄단하게 다져나갑니다. 자신들의 훌륭한 국가 시스템을 대외적으로 널리 소개함으로써, 리무루가 최종적으로 목표로 삼았던 '국제 사회의 인정'에 한 발짝 크게 다가가는 영리한 왕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끝없는 회의와 도파민의 부재, 카타르시스를 원했던 나의 솔직한 심정
결론적으로 앞서 길게 이야기했듯이, 전생슬 3기는 화려한 액션물이라기보다는 고도의 '정치 회의물'에 가까웠고, 다음에 나올 진정한 대전쟁 이야기를 위한 거대한 '빌드업' 자체가 주된 목적이 된 시즌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애니메이션 러닝타임 내내 테이블에 둘러앉아 서류를 보며 침을 튀기며 토론하는 회의 장면들만 주구장창 나오게 되는데요.
만약 저처럼 전생슬 장르에 기대하는 바가 눈이 핑핑 돌아가는 긴박한 전투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 넘치는 액션 이야기를 강력히 원하고 시청한 사람이라면, 솔직히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 최악의 3기였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네, 바로 퇴근 후 도파민 수혈을 원했던 제 경우가 딱 그랬거든요. 물론 이야기의 거시적인 흐름에 있어서 이러한 잔잔한 정치가 세계관을 더욱 정교하고 탄탄하게 구축해 주고, 인물들 간의 끈끈한 관계를 새롭게 다지며, 각 캐릭터의 독특한 성격과 가치관을 시청자에게 깊이 있게 전달함으로써 작품에 더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라는 것은 머리로는 100% 이해합니다. 하지만 2기 때의 '신의 분노' 같은 짜릿한 카타르시스와 사이다 액션을 목 빼고 기대하던 저로서는 조금은 실망스럽고 감질나는 아쉬운 내용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뇌 빼고 보는 게 나을 뻔했죠.
그래도 리무루가 꿈꾸는 이상향이 완벽히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팬심으로는 나름 흐뭇한 구석도 있는 시즌입니다. 회의 지옥을 견뎌내고 마침내 마물들의 대축제를 성공시킨 리무루의 다음 행보는 또 어떻게 스케일이 커질지, 다가올 다음 대전쟁 시즌을 기약해 봐야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번 3기 회의 장면에 만족하셨나요, 아니면 저처럼 지루하셨나요?